본문 바로가기
  • 자연이 좋고, 농촌이 좋고, 나무와 들꽃을 좋아하는 촌놈의 살아가는 이야기
아름다운 세계의 정원

아름다움과 웅장함의 극치 '베르사유궁전 정원'

by 오리니 2018. 5. 9.

요약 드넓은 대운하와 감귤원이 베르사유의 웅장함과 정형성을 대표하고 거기에 소박하기 그지없는 프티 트리아농이 자연스럽고 전원적인 풍경을 더하는 프랑스의 대표 정원이다. 



베르사유는 처음에는 사냥하기에 좋은 소택지였으며 루이 13세가 1624년 이곳에 수렵용 별장을 지어놓으면서 지금의 궁전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별장은 벽돌로 지어진 무척 간소한 것이었으나 중정의 네 구석에는 원정(園亭)이 세워져 있었고 주위에는 넓은 호를 돌려놓아 아름다운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 정원은 보이소(Jacques Boyceau)가 설계한 것으로 16세기 말의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루이 14세는 12세 때 처음으로 그곳에 사냥하러 갔다가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이 마음에 들어 왕위에 오른 다음 부왕이 지어놓은 별장 주변에 필요에 따라 건물을 증축해나갔으나 그나마 방치하고 있었다. 루이 14세가 궁전과 궁원의 확장을 결정한 것은 보르비콩트 성을 보고 난 뒤이다.


 

베르사유의 궁원은 르 노트르에 의해 약 40년(1661~170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다. 르 노트르는 이 밖에도 퐁텐블로 성, 생클루 궁전 등 뛰어난 정원을 차례로 만들어 '정원사의 왕'이라는 영예를 얻게 된다. 그가 설계한 정원은 엄청난 수에 이르고 있으나 그의 이름을 역사에 영원히 남게 한 것은 베르사유라 할 수 있다.







감귤원

     

궁원 가운데 맨 처음 만들어진 부분은 남쪽 화단 밑에 있는 감귤원(柑橘園)이다. 1664년에 현재 중원이라고 불리는 대화단(大花壇)보다도 한 단 낮은 남측에 감귤원을 만들었다. 르 노트르와 함께 식수(植樹)를 담당했던 라칸티니가 190본의 감귤류를 이식했다고 하며 훗날 확장했지만 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베르사유 궁을 등지고 왼쪽에 위치하는데 전체를 오렌지나무로 포트식재(화분에 나무를 식재하여 이동하기 편리하고 다양한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다)하여 연출하고 있다. 2000년(왼쪽 사진)에 볼때와 다르게 잔디밭이 무늬를 갖게 되었고 포트 또한 배치를 달리한 것 같다.

    

감귤원의 위쪽 화단에는 루이 13세 시대에 보이소가 만들어놓은 화단이 있으나 확장하면서 두 배로 확대되었으며 이 화단은 물의 화단이라고 불리고 있다. 르 노트르는 이곳을 화단과 동일한 효과를 지니는 곳으로 조성하고자 하였으나 실현시키지는 못하였다.

 

베르사유 궁원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대운하이다. 이는 정원을 넓게 보이게 하고 저습지의 배수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남북으로 길이 1,560미터, 평균 폭 62미터이며 장축의 커낼과 직교를 하며 십자형을 이루는 축은 1,013미터에 이른다. 보르비콩트는 중심축의 끝을 잔디언덕으로 처리하여 깊이 있고 넓은 정원의 시선 처리를 유도하였으나, 베르사유는 중심축을 거대한 대운하와 감귤원으로 처리하여 보다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성을 뒤로하고 중심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멀리 대운하(인공호수)가 보인다. 좌우대칭을 이루며 중심축은 대운하와 잔디밭을 지나 지평선과 마주하여 끝없이 펼쳐진다. 보르비콩트와는 다른 웅장함과 거대함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루이 14세는 베네치아에서 가져온 곤돌라를 타거나 수상경기 등을 하였다고 한다. 르네상스 후기 정원은 대개 사교의 장으로 쓰였으며 베르사유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도회, 연극 등 그 시대의 연회와 유희가 대부분 여기서 열렸다.

 

 

 

 

대운하(인공호수)

 

정원의 규모를 더욱 웅장하게 보이게 하며 저습지의 배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곤돌라를 타거나 수상경기를 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총림이 물의 배경이 되고 있다.

      

물의 화단 북측에는 피라미드의 분수, 물의 원로, 님프의 연못, 용의 연못, 넵튠 분수 등이 있다. 피라미드의 분수는 북측의 화단으로부터 물의 원로로 들어가는 곳에 자리하며 조각상을 받쳐 든 네 개의 수반을 피라미드형으로 쌓아올린 독창미가 넘치는 분수이다. 물의 원로는 잔디 원로의 양측에 14개의 작은 분천이 어린이 조각과 과실, 꽃을 담은 접시를 받쳐 들고 있는 구조를 가졌다.







물의 원로

  

용의 분수로 가는 길로 양쪽에 토피아리가 늘어서 있고 촛대 받침을 연상케 하는 분수들이 서 있다.



태양왕 아폴론이 네 마리의 말과 함께 마차를 끌고 솟아오르는 모습의 아폴론 분수는 역동감과 생동감이 넘치며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님프의 연못은 그리스 신화에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가 님프와 즐기는 상상에 의해 만들어졌다. 베르사유 궁전의 입구에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상이 근엄하게 서 있어 베르사유의 장대함과 루이 14세의 강력한 통치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스의 신 아르테미스가 님프와 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아래쪽에는 신에 의해 두꺼비로 변한 인간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환상적이고 멋진 분수 쇼는 성수기인 5월부터 9월까지는 매주 토 · 일요일에, 비수기에는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 열린다. 한 번쯤 여유를 가지고 보는 것도 후회는 없을 듯하다.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

 

루이 14세의 별궁이었던 그랑 트리아농은 1687년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기둥식 회랑을 배치한 이탈리아 양식의 단층 건물로, 장밋빛 대리석이 엄청나게 사용되어서 대리석의 트리아농이라고도 불린다. 루이 14세는 애첩인 망테팡(Madame de Montespan)과 지내기 위해서 이 별궁을 지었으며, 궁전의 격식에서 벗어나 가족과의 사적인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랑 트리아농은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

 

조경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 15세가 1749년부터 식물원을 만들었는데 프티 트리아농은 1762년부터 1768년에 식물원의 중앙에 만든 저택으로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을 위해서 자크 앙주 가브리엘(Jacques - Ange Gabriel)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궁전이 완공된 당시에는 퐁파두르 부인은 이미 사망한 후였다. 그 후에는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에게 주어지고, 그녀는 정원을 영국식으로 만든 후 농촌 마을을 모방해 꾸며놓은 왕비의 마을을 만들었다. 이곳은 프랑스 혁명 동안에는 술집이 되기도 했다. 궁전 내부는 2층의 8개의 방이 공개되는데, 루이 15세 시절의 장식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왕비의 마을(Hameau de la Reine)

 

18세기에는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 자신의 마을을 소유하고, 취미 삼아 농사일을 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런 목적으로 1783년에 12채의 농가로 이루어진 왕비의 마을을 만들었다. 초가지붕으로 된 예쁜 농가가 옹기종기 모인 동화 속 마을 같은 곳으로, 왕비가 직접 소젖을 짜기도 하고 낚시를 하기도 했으며, 왕가 사람들은 이곳에서 목가적인 분위기를 만끽하며 편안한 생활을 즐겼다. 현재는 ‘왕비의 집’, ‘물레방아 집’, ‘말보루 탑의 집’ 등의 10채가 남아 있으며, 근처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애인과 밀회하던 장소라고 전해지는 ‘사랑의 신전’이 있다.








그 외 다양한 정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