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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이 좋고, 농촌이 좋고, 나무와 들꽃을 좋아하는 촌놈의 살아가는 이야기
아름다운 세계의 정원

한국정원 - 보길도의 '부용동'정원

by 오리니 2012. 9. 3.

보길도의 부용동정원은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원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큰 규모의 별서정원이다.

 

이 부용동 정원은 지난 2009년 여름휴가로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부용동정원’은 병자호란 후 윤선도가 12년간 은둔생활을 하던 곳으로서,

1636년 병자호란때 왕이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였는데

항복을 반대하던 윤선도는 벼슬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여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의 수려한 경관에 매료되어 머물렀던 곳이다.

이 섬은 윤선도의 해남 연동의 본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별서(別墅 :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별장)를 짓고 여기에 정원을 꾸민 것이다.

 

이 섬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격자봉을 중심으로 동북 방향으로 아름다운 계류가 흐르고 있는데,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정사와 연못을 축조하여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였다.

 

 

    

정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입구의 세칸짜리 정자인 세연정(洗然亭) 주변과

휴식과 독서를 위해 건너편 산허리의 바위 위에 집을 마련한 동천석실(洞天石室) 주변,

거처하는 살림집이 있는 낙서재(樂書齋) 주변이다.

 

윤선도가 51세 때 처음으로 보길도를 찾아 입구에 세연정과 연못을 축조하였는데,

물과 바위와 대와 소나무·대나무 등을 이용한 정원공간으로

지금까지 부용동정원 중에서도 가장 잘 남아 있는 유적이다.

 

 

세연정(洗然亭)은 이 정원에서 가장 공들여 꾸민 곳으로 유희의 공간이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판석으로 만든 보를 설치하여 둑을 조성하고

자연적으로 수위조절이 되도록 조성한 연못(세연지)가에 단을 조성하여 지은 3칸짜리 정자로서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안빈낙도의 이상세계를 구현하려 하였던

윤선도 사상의 정점을 구현하는 곳이다.

 

 

 

해변에 바로 인접한 동구에 인공으로 물길을 조성하면서

연못들을 만들고 정자와 대를 지어 경관을 즐겼다.

 

연못은 곡지와 방지로 구성되는데

동구를 흐르는 내를 돌로 된 보로 막아 만든 곡지에는 큰 바위들을 점점이 노출시켰으며,

자연에 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해서 자유분방하게 보인다.

 

 

 

 

 

 

 

 

 

 

방지에는 한 쪽에 네모난 섬을 만들고 그 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방지의 동쪽 물가에는 돌로 된 네모진 단 두 개를 나란히 꾸며놓았는데,

이곳은 무희가 춤을 추고 악사가 풍악을 울리던 자리이다.

방지 남쪽에는 나지막한 동산이 있는데 세연정은 이 동산 위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닭 울음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 윤선도는 독서를 하고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오후가 되면 가마에 술과 음식을 담아 무희와 함께 세연정으로 향해

악공들의 연주소리와 연못에 작은 배를 띄워 무희들의 노래를 들으며 술과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낙서재(樂書齋)는 서실을 갖춘 살림집으로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이 곳에서 세상의 명리를 떠나 꾸밈없는 생활을 영위하였다.

옆으로 낭음계라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낭음계의 양편에 곡수당과 무민당의 두 건물을 지었다.

이 두 건물의 곁에는 넓고 네모진 연못이 있다.

 

 

곡수당은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지은 집이다.

윤선도의 아들이 조성한 초당 석정 석가산 연못 화계 다리 등의 다채로운 정원을 만든 곳이다.

 

 

동천석실(洞天石室)은 가장 높은 곳으로 곡수당 건너 산중턱 절벽 위에 지은 1칸짜리 집인데

독서하며 사색을 즐겼다 한다.

동천석실은 천하의 명산경승으로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을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한 데서 이름지어진 곳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은 1,000여평의 공간으로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대 희황교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석문 안의 두어칸 되는 반석에는 다도를 즐기던 흔적이 있고 그 주위로는 건물터가 있다.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하였다.

 

윤선도는 1637년부터 85세로 죽을 때까지

일곱 차례나 보길도에 왔다갔다 하면서 13년 동안을 머물렀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40수와 32편의 한시를 남겼다.

 

 

부용동정원은 윤선도가 죽자 곧 황폐하게 되었고,

3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초석이 흩어져 있을 뿐

과거의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주변에 인가가 산재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인적이 드물어 정원의 유적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어

연못이나 건물자리들이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