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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이 좋고, 농촌이 좋고, 나무와 들꽃을 좋아하는 촌놈의 살아가는 이야기
아름다운 세계의 정원

한국정원 - 담양 '소쇄원'

by 오리니 2012. 8. 24.

우리나라 정원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궁원, 향원, 민간정원으로 나뉜다.

궁원은 임금님을 위한 정원으로 창덕궁 후원이 대표적이며

향원은 지방관리가 조성한 정원으로 남원 광한루 등이 있고

사대부 선비들이 꾸민 민간정원이 있다.

 

한국의 민간정원 중에서 최고라고 하는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1530년경)에 양산보가 만든 별서정원이다.

 

별서정원은 선비가 낙향을 하여 꾸민 정원을 의미하는데

이곳 소쇄원과 보길도의 부용동(세연정) 등이 대표적이다.

산수정원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하여 만든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를 들 수 있다.

 

소쇄원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민간정원 가운데서

디자인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정원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우선 큰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그 사이를 흘러 떨어지는 물줄기,

수많은 나무와 화초, 몇 단의 축대와 단아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아담한 공간이 있고

 

이외에도 ㄱ자로 꺾인 담장과 조그마한 초정(草亭),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 물을 흘러가게 하는 홈이 파인 통나무,

네모난 연못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조경물과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곳에 만들어진 건물 하나하나, 심어진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모두 선비의 마음과 추구하던 이상을 담겨 있다.

 

조선 중종 때 개혁 정치를 펼치던 조광조의 급진적인 정책이 반발을 사는데,

조광조는 화순 능주로 귀향을 가게 되고

그의 제자였던 양산보는 이곳으로 낙향하여 더 이상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10여 년에 걸쳐 소쇄원을 꾸며 이곳에 머물며 자연을 감상하고

사람 만나기를 즐겼다고 한다.

이곳을 드나든 사람은 송순, 정철, 송시열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조선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풍광을 관상하며 여유를 즐긴 장소요,

이상을 토로하던 문화 담론의 산실이었다.

 

 

소쇄원의 주인인 양산보가 죽을 때 유언을 남겼는데,

남에게 팔지 말며,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말라고 했다 한다.

그의 뜻대로 지금껏 잘 보존되어온 정원이다.

 

소쇄원 입구에 들어서면 대숲이 시원하게 우거져 있으며,

소쇄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작은 천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제월당, 광풍각 등의 건물이 있다.

 

계곡 옆 정자인 광풍각은 ‘침계문방’이라 하여

머리맡에서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이라 이름 붙은 곳으로

소쇄원 48영 중에서 제2영에 해당한다.

 

 

소쇄원 가장 높은 곳에 있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제월당은

‘비 갠 뒤 하늘의 맑은 달’을 뜻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물로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를 즐기던 곳이다.

한눈에 돋보이는 아름다움은 없으나 건물 마루에 앉아 주변을 바라보며

계류의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들이 드나들었던 소쇄원은

눈으로 감상하는 시각적 차원을 넘어선 청각적인 정원이며

궁극적으로 시적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적인 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