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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이 좋고, 농촌이 좋고, 나무와 들꽃을 좋아하는 촌놈의 살아가는 이야기
시골촌놈 이야기

여름휴가에 찾아간 강화도(첫째날)

by 오리니 2011. 8. 17.

매년 여름휴가철이면

집사람과 함께 한두군데 지역을 찾아 떠난다.

 

올해엔

삼촌이 살고 계시는 강화도를 찾았다.

 

떠나기 하루전에 삼촌께 연락 드렸더니

숙소도 잡아 놓으시고 여행일정도 마련해 놓으셨단다.

 

열시쯤 출발해 삼촌이 계시는 강화군 송해면을 도착하니까

벌써 오후 두시가 넘었다.

 

차한잔 마시고 바로 출발한 곳이

그곳 가까이에 있는 화문석문화관이다.

전국 유일의 왕골공예품인 화문석이 생산되는 곳이 강화란다.

 

들어서니까 보이는 것들이 온통 화문석으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이다.

방석도 있고 그릇들.. 목걸이를 비롯한 다양한 관광상품들도 진열되어 있었는데

삼촌께서 우리부부를 위해 화문석 넥타이와 목걸이를 사주셨다.

 

 

 

 

 

 

두번째 찾은 곳이

강화를 찾는 사람들이 꼭 들른다는 그 유명한 고인돌 박물관이다. 

역사책에 나온다는 그 고인돌 앞에서 우리부부는 기념사진 한컷 찍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의 하나로 탁자모양의  북방식 고인돌이란다.

강화 고인돌은 2000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고인돌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고인돌로 높이 2.6m, 덮게석길이 6.4m, 너비 5.2m나 된다.

 

고인돌 시대에 인류가 살았던 집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여기는

조선시대 25대 왕인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거쳐했다는 용흥궁이다.

서울 창덕궁의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으로 지어 질박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들어 가는 입구에 용흥궁이라는 서각이 걸려 있다.

 

궁내에 들어서면 여느 사대가의 집처럼 편안하고 소박해 보인다.

 

여기는

1890년 카톨릭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파된 후

1893년 영국인 왕란도 신부가 강화읍 갑곳리에서 회당 겸 사택을 매입하고 이곳에서 전도를 시작했던 곳으로

1900년 현재의 한식건물을 완공하였다 한다.

들어가는 입구는 가파른 경사길로 양쪽에는 자귀나무가 심겨져 있고 넢다란 대문에는 성공회강화성당이라 쓰여 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찰형태로 지어져 채색되어 있으며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었다.

 

입구쪽에는 사찰에서 흔히 사천왕을 세워 놓을 법한 집이 마련되어 있어서 사찰양식을 딴 성당으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39년간 줄기차게 항전하던 고려궁궐의 터를 찾았다.

고려가 이곳을 함락하면서 집터하나 남기지 않고 허물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냥 궁터였다는 것 밖엔 어느 것도 느낄수가 없었다.

조선시대에 세웠다는 집만 덩그러이 남아 있다.

고려궁터에 고목이 된 회화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회화나무는 장원급제 하였을 때 기념으로 심는다 하여 선비목이라고도 한다. 

 

여기는 돈대이다.

돈대란 요즘의 소대정도의 병력이 거주하였던 곳을 말한다.

 

 

삼촌께서 숙소로 마련해 주신 석모도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저녁엔 찾아가 자기에 급급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잤다.

자고나서 아침에 나가보니까 흐릿한 안개속에 아름답게 지여진 목조건물이었다.

주변에는 범의꼬리, 잔디패랭이, 돌단풍 등 야생화들이 심겨져 있었고

3개 물길이 내려오는 폭포와 산책길도 있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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